1997년,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남태평양 남극 인근에서 전 세계 과학계와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심해 음향을 기록했습니다. ‘Bloop’라는 별명을 얻은 이 소리는 고래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보다도 강력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채 20년 넘게 논쟁과 미스터리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초기에는 미지의 거대 해양생물 가능성이 대두되었지만, 이후 다양한 과학적 분석과 재해석이 이어졌습니다. 이 글에서는 NOAA의 발견 과정, Bloop의 음향학적 특징, 제기된 가설들, 최신 연구 결과, 그리고 이 현상이 문화와 과학에 남긴 영향을 살펴봅니다.
1997년 NOAA의 발견과 기록 과정
1997년 여름, NOAA의 ‘Equatorial Pacific Ocean Autonomous Hydrophone Array’라는 수중 청음망이 남태평양, 남극 대륙 북쪽 약 1,500km 떨어진 해역에서 이례적인 저주파 음향을 포착했습니다. 이 장비들은 해저 케이블과 연결된 수중 마이크(하이드로폰)로, 수천 km 떨어진 소리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당시 Bloop는 4,800km 이상 떨어진 복수의 청음기에서 동시에 기록될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데이터 분석 결과, 소리는 약 1분 이상 지속되었으며, 점차 주파수가 상승하는 특성을 보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주파수 변화 패턴은 생물 음향에서 종종 관찰되지만, 출력 강도는 알려진 어떤 해양생물보다 훨씬 컸습니다. 특히 블루웨일(흰긴수염고래)의 최대 188데시벨 음향보다도 강력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Bloop의 음향학적 특징
Bloop는 10~40Hz의 저주파 대역에서 강하게 나타났으며, 인간의 청력으로는 직접 들을 수 없지만, 가속 재생하면 고래의 울음소리와 유사하게 들립니다. 당시 NOAA 연구진은 이 소리의 진폭과 전파 거리가 매우 크다는 점에서, 소리의 진원지가 지름 수십 미터 이상일 가능성을 추정했습니다. 일반적인 해양 포유류의 발성 기관 크기로는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또한, 소리의 시작은 비교적 짧지만, 여운이 길게 이어지는 특성이 있어 단순한 충격음보다는 연속적인 발성 또는 장기적인 구조 붕괴에 가까웠습니다.
제기된 주요 가설
1. 초거대 해양생물설 심해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거대한 생물이 존재할 가능성입니다. Bloop의 주파수 변화가 생물 발성과 유사하다는 점이 근거입니다. 일부 해양생물학자는 대왕오징어, 혹은 그보다 훨씬 큰 두족류나 고래 미지종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2. 빙하 붕괴설 NOAA 내부 연구진 중 일부는 남극 인근 빙하가 해저로 떨어지거나 거대한 균열이 발생할 때 Bloop와 유사한 저주파 소리가 발생한다고 보고했습니다. 빙하 붕괴음 데이터와 Bloop를 비교한 결과, 파형이 유사하게 나타난다는 점이 근거입니다. 3. 지질 활동설 해저 화산 폭발, 해저 산사태, 메탄 하이드레이트 폭발이 원인일 수 있다는 가설입니다. 그러나 Bloop는 단순 폭발음과 달리 점진적인 주파수 변화가 있어 완벽한 설명은 어렵습니다.
최신 재분석과 NOAA의 공식 입장
2012년, NOAA는 Bloop가 남극 라르센 빙붕(Larsen Ice Shelf) 인근에서 발생한 대규모 빙하 붕괴음과 거의 동일하다는 분석을 발표했습니다. 실제로 빙하가 갈라질 때 발생하는 소리는 낮은 주파수부터 높은 주파수로 이동하는 특성을 보이며, 진폭 역시 매우 강력할 수 있습니다. 이 분석 이후 과학계 다수는 빙하 붕괴설을 수용했지만, 일부 음향학자들은 “빙하 붕괴만으로 수천 km 전파와 기록된 강도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혹시 빙하 붕괴와 동시에 발생한 해저 지질 활동, 혹은 생물 활동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대중문화와 과학에 남긴 영향
Bloop 사건은 과학계뿐 아니라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괴물 영화, 게임, 소설에서 Bloop를 모티브로 한 ‘심해 괴생물체’가 등장했고, 유튜브와 팟캐스트에서는 지금도 이 사건을 다루는 콘텐츠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는 Bloop가 심해 음향학 연구와 장거리 수중 청음 기술 발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NOAA와 다른 연구기관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심해 음향 데이터의 장기 모니터링 필요성을 강조했고, 실제로 이후 유사한 미지의 음향 신호가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Bloop는 1997년의 단일 사건이지만, 심해의 미지성과 과학적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한 사례입니다. 최신 분석은 빙하 붕괴음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심해 생물 가설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연구자들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결국 이 사건은 우리가 바다에 대해 얼마나 적게 알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앞으로도 심해 탐사와 음향학 연구의 동기가 될 것입니다.